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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력을 보다가 잠깐 멈췄다. 오늘이 10월 4일이면, 올해가 딱 88일 남았다. 지난달 말에 '올해 100일 남음' 지점을 지나쳤고, 이제는 두 자리 숫자다. 수능 100일 전에 교실 뒤에 붙던 그 숫자를 마흔 넘어서 다시 만나니 기분이 묘하다. 지난 8월에 2026년 목표 중간 결산을 하면서 살아남은 목표 3개와 접은 목표 4개를 정리했는데, 그로부터 한 달 반쯤 지났다. 이번 글은 그 후속이다. 남은 100일 동안 뭘 할 것인가. 결론부터 말하면, 나는 목표를 새로 세우지 않았다. 오히려 더 줄였다.

남은 100일, 목표를 새로 세우지 않은 이유
연말이 다가오면 이상한 조급함이 생긴다. "올해가 가기 전에 뭐라도 해야 하는데" 하는 마음. 그 마음이 시키는 대로 하면 보통 10월에 새 목표를 서너 개 추가하게 되고, 12월 31일에 그 목표들은 전부 미완성 상태로 내년 목표 리스트에 복사된다. 나도 몇 년을 그렇게 살았다. 재작년 10월에는 갑자기 영어 회화를 등록했고(11월에 접었다), 작년 이맘때는 사이드 프로젝트를 새로 시작했다(커밋 14개 남기고 멈췄다).
올해는 그 패턴을 끊기로 했다. 이유는 단순하다. 100일은 뭔가를 새로 시작해서 결과를 내기엔 짧고, 하던 걸 마무리 짓기엔 충분한 시간이기 때문이다. 애 셋 키우면서 회사 다니는 40대의 하루에서 목표에 쓸 수 있는 시간은 많아야 한두 시간이다. 그 한두 시간을 새 목표의 시동 거는 데 쓰면, 이미 8개월 굴려온 목표들의 마무리가 흐지부지된다. 시동 비용이 제일 비싸다는 건 개발하면서 지겹게 배웠다. 컨텍스트 스위칭이 성능을 잡아먹는 건 CPU나 사람이나 똑같다.
4분기 목표는 3개, 각각 숫자 하나씩
그래서 8월 중간 결산에서 살아남은 목표들을 그대로 가져가되, 남은 100일 동안 도달할 지점을 숫자 하나씩으로 다시 박았다. 목표가 "꾸준히 운동하기" 같은 상태 목표면 연말에 평가가 안 된다. "했나 안 했나"를 셀 수 있어야 한다.
1. 몸: 새벽 운동 주 4회 × 12주 = 48회 중 38회 이상
지난 9월 초에 새벽 30분 홈트 석 달 기록을 썼다. 그 리듬을 연말까지 끌고 가는 게 첫 번째 목표다. 다만 "매일 하기"가 아니라 주 4회로 잡았다. 석 달 굴려보니 주 5회 이상 잡으면 한 번 깨질 때 죄책감으로 이틀을 더 날리고, 주 4회면 하루 밀려도 복구가 된다. 12주 동안 48번의 기회 중 38번 이상 하면 성공. 달성률 80%다. 100%를 목표로 안 잡는 이유는, 애가 셋이라 새벽에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는 게 우리 집 기본값이기 때문이다. 아이가 새벽에 열이 나면 그날 운동은 없는 거다. 그걸 실패로 계산하는 시스템은 오래 못 간다.
2. 일: 방치한 기술 부채 하나를 연말 전에 청산
회사 일 말고, 내 개인 인프라 얘기다. 몇 년째 "언젠가 정리해야지" 하고 미뤄둔 게 하나 있다. 로컬 NAS와 백업 체계다. 가족사진이 아이폰, 아내 폰, 구글 포토, 외장하드 두 개에 흩어져 있고, 그 외장하드 중 하나는 5년이 넘었다. 개발자가 남의 서버 장애는 잡으러 다니면서 정작 자기 집 데이터는 단일 장애점에 올려놓고 사는 게 몇 년째다. 4분기 안에 백업 3-2-1 원칙(사본 3개, 매체 2종, 오프사이트 1개)에 맞는 구조를 만들고, 흩어진 사진을 한 곳으로 모으는 것까지가 목표다. 완료 조건은 명확하다. 12월 31일에 "외장하드 하나가 지금 죽어도 잃는 게 없는가"에 예라고 답할 수 있으면 된다.
3. 돈: 연말 가계 결산을 12월에 미리 끝내기
지난달 초에 기준금리 3% 시대 가계 점검 글을 쓰면서 대출과 고정지출을 한 번 훑었다. 그때 만든 점검표를 일회성으로 끝내지 않고, 12월 둘째 주까지 올해 가계 결산을 마치는 게 세 번째 목표다. 보통 연말 결산은 1월에 카드값 정산하면서 얼렁뚱땅 하게 되는데, 그러면 결산이 아니라 회고가 된다. 12월 중순에 끝내면 연말정산 준비, 내년 보험 갱신, 예적금 만기 재배치를 금리 상황 봐가며 여유 있게 결정할 수 있다. 완료 조건은 스프레드시트 한 장. 올해 12개월 수입·지출·저축률이 한 화면에 나오면 끝이다.

접은 목표는 다시 줍지 않는다
8월에 접은 목표 4개는 4분기에도 그대로 접힌 상태로 둔다. 이게 생각보다 어렵다. 연말이 되면 접었던 목표들이 자꾸 말을 건다. "지금이라도 하면 되잖아." 안 된다. 8월에 접을 때는 이유가 있어서 접은 거고, 그 이유(시간, 체력, 우선순위)는 10월이라고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연말엔 회사 일도 집안 행사도 몰린다.
대신 접은 목표들은 노트 한 페이지에 "왜 접었는지"와 함께 적어뒀다. 내년 1월에 새해 목표를 세울 때 이 페이지부터 읽을 거다. 같은 목표를 같은 방식으로 다시 세우는 실수를 막는 데는 이만한 게 없다. 작년의 나는 이 기록을 안 남겨서, 올해 초에 재작년과 거의 똑같은 목표를 세웠다가 똑같은 지점에서 접었다. 장애 회고를 안 쓰면 같은 장애가 또 터지는 것과 같은 원리다.
100일을 굴리는 방식: 주간 점검 10분
목표를 줄인 대신 점검 주기는 촘촘하게 잡았다. 매주 일요일 밤, 아이들 재우고 나서 10분. 딱 세 줄 쓴다.
- 운동: 이번 주 몇 회 / 누적 몇 회 (목표 페이스 대비 ±)
- NAS: 이번 주에 한 것 한 줄 (안 했으면 "안 함"이라고 그대로 쓴다)
- 돈: 이번 주 특이 지출 한 줄
포인트는 "안 함"을 그대로 쓰는 거다. 주간 점검이 무너지는 순간은 바쁜 주가 아니라, 못 한 주에 점검 자체를 건너뛸 때다. 한 번 건너뛰면 다음 주에 두 주치를 써야 하니 더 하기 싫어지고, 그렇게 시스템이 죽는다. 기록이 초라해도 기록을 하는 것과 안 하는 것의 차이가 연말에 결산 가능한 한 해와 기억에 의존하는 한 해를 가른다.
그리고 12주짜리 표를 하나 만들었다. 세로축이 목표 3개, 가로축이 주차다. 매주 채워지는 칸을 보는 것만으로도 페이스 감각이 생긴다. 스프린트 번다운 차트를 집에서도 쓰는 셈인데, 도구는 거창할 필요 없다. 나는 그냥 노션 표 하나다. 종이 달력에 동그라미를 쳐도 똑같이 작동한다.

40대의 목표 관리에서 배운 것
20대에는 목표가 많을수록 열심히 사는 것 같았다. 30대에는 목표를 이루는 기술(습관, 루틴, 앱)에 돈과 시간을 썼다. 40대가 되고 아이가 셋이 되니 결론이 단순해졌다. 목표의 개수를 줄이는 것 자체가 가장 강력한 목표 달성 기술이다. 시간과 체력이 유한하다는 걸 몸으로 아는 나이가 되면, 뭘 할지보다 뭘 안 할지 정하는 게 계획의 대부분이 된다.
올해 남은 100일 동안 내가 새로 시작하는 건 없다. 운동은 하던 걸 유지하고, NAS는 미루던 걸 끝내고, 가계부는 하던 걸 한 단계 당겨서 마무리한다. 화려한 게 하나도 없다. 그런데 12월 31일에 이 세 개가 다 되어 있으면, 올해는 꽤 괜찮은 해였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남은 100일 목표 점검 체크리스트
비슷한 상황에 있는 분들을 위해, 내가 4분기 목표를 정리하면서 쓴 질문들을 남긴다.
- 지금 굴리고 있는 목표 중 연말까지 마무리 지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 새로 추가하고 싶은 목표가 있다면, 그건 내년 1월에 시작해도 늦지 않은가? (대부분 늦지 않다)
- 각 목표의 완료 조건을 숫자 하나 또는 예/아니오 질문 하나로 적을 수 있는가?
- 달성률 100%가 아니라 80%를 기준으로 잡아도 의미가 있는 목표인가?
- 주간 점검을 10분 안에 끝낼 수 있는 형태인가?
- 목표가 3개를 넘는가? 넘는다면 어떤 걸 내년으로 보낼 것인가?
- 올해 접은 목표를 "왜 접었는지"와 함께 기록해뒀는가?
연말까지 88일. 숫자로 보면 짧지만, 주간 점검으로 보면 12번의 기회가 남았다. 새해 계획은 1월 1일에 세우는 게 아니라 12월의 결산에서 나온다고 믿는다. 연말에 결산 글로 돌아오겠다. 그때 이 글이 부끄럽지 않도록, 일단 내일 새벽 운동부터.
이미지 출처: Unsplash — Road Ahead, Renáta-Adrienn, Estée Jansse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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