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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일에 노트에 적어둔 목표를 8월에 다시 꺼내 보는 건 생각보다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대부분은 안 꺼내 본다. 나도 작년까지는 그랬다. 연초에 신나서 적어놓고, 연말에 "아 맞다 그런 게 있었지" 하고 덮는 패턴을 십 년 넘게 반복했다. 올해는 그 패턴을 끊어보려고 아예 달력에 박아뒀다. 8월 둘째 주, 연간 목표 중간 결산. 그래서 이 글은 계획에 대한 글이 아니라 결과에 대한 글이다. 살아남은 목표 3개, 접은 목표 4개. 숫자 그대로 적는다.
미리 말해두면 이 글에 대단한 반전은 없다. 목표의 절반 이상이 죽었고, 살아남은 것들도 처음 계획보다 쪼그라든 상태로 살아남았다. 다만 매년 12월에 "올해도 흐지부지였네"라는 감상평 한 줄만 남기던 사람이, 올해 처음으로 뭐가 왜 죽고 뭐가 왜 살았는지 항목별로 말할 수 있게 됐다. 40대에 새로 생긴 능력치고는 꽤 쓸모가 있어서 기록으로 남긴다.

사진: Unsplash, Estée Janssens
숫자로 먼저 보는 8개월
변명이나 서사보다 표가 정직하다. 1월에 세운 목표 7개의 현재 상태를 그대로 옮긴다.
| 목표 | 연초 계획 | 8월 현재 | 판정 |
|---|---|---|---|
| 운동 | 주 3회 | 주 2회 정착 (32주 중 27주 달성) | 생존 |
| 글쓰기 | 주 1편 | 최근 두 달 주 2편 이상 | 생존 |
| 가족 나들이 | 월 1회 이상 | 8개월간 11회 | 생존 |
| 새벽 5시 기상 | 매일 | 3월에 중단 | 폐기 |
| 영어 회화 | 주 3회 30분 | 누적 9회 | 폐기 |
| 사이드 프로젝트 수익화 | 월 10만 원 | 수익 0원 | 보류 |
| 독서 24권 | 월 2권 | 7권 | 하향 조정 |
7개 중 3개 생존. 성공률로 치면 43%다. 낮아 보이는데, 작년 이맘때 같은 표를 만들었다면 아마 0개였을 거다. 그래서 나는 이 표를 실패의 기록이 아니라 올해 처음 생긴 데이터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표를 만들면서 스스로 정한 규칙이 하나 있다. 판정에 "노력했다", "나름 열심히 했다" 같은 말을 금지하는 것. 개발 일을 오래 하다 보면 몸에 배는 감각인데, 배포가 됐거나 안 됐거나 둘 중 하나지 "거의 배포됐다"는 상태는 없다. 목표도 같은 기준으로 보기로 했다. 그래서 판정이 험해졌지만, 덕분에 아래 분석이 가능해졌다.
살아남은 목표 1: 운동, 주 3회를 버리고 주 2회를 얻었다
연초 목표는 주 3회였다. 1월은 지켰다. 2월부터 무너졌다. 셋째가 감기에 걸리면 한 주가 통째로 날아가고, 배포 일정이 겹치면 또 한 주가 날아갔다. 3월 초에 기록을 보니 주 3회를 지킨 주가 8주 중 2주였다. 여기서 예전 같으면 "역시 난 안 돼" 하고 접었을 텐데, 올해는 목표를 깎았다. 주 2회. 대신 요일을 박았다. 화요일 저녁, 토요일 아침. 이 두 개는 회사 일정이나 아이들 일정과 겹칠 확률이 가장 낮은 시간대였다.
결과적으로 3월부터 지금까지 32주 중 27주를 지켰다. 몸무게는 대단히 안 빠졌다. 1월 81.2kg에서 지금 78.9kg. 8개월에 2.3kg이면 다이어트 글에 쓸 숫자는 못 된다. 대신 다른 게 바뀌었다. 작년에는 계단 세 층을 오르면 숨을 골라야 했는데 지금은 그냥 올라간다. 새벽에 아이가 깨서 안고 재울 때 허리가 버틴다. 40대의 운동은 몸을 만드는 게 아니라 생활을 버티게 하는 거라는 걸 숫자보다 몸이 먼저 알려줬다.

사진: Unsplash, Miquel Parera
운동 종류는 거창하지 않다. 화요일은 집에서 덤벨과 맨몸 운동 40분, 토요일은 동네 하천을 5km 달린다. 헬스장 등록도 고민했지만, 이동 시간 왕복 40분이 아까워서 접었다. 40대에 애가 셋이면 운동 자체보다 운동까지 가는 길을 없애는 게 핵심이다. 덤벨은 몇 년 전에 산 20kg 조절식 한 쌍이 전부고, 프로그램도 스쿼트, 데드리프트, 숄더프레스, 로우 네 가지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종목을 늘릴수록 준비가 귀찮아지고, 귀찮아지면 빠지게 된다는 걸 몇 번의 실패로 배웠다.
기록은 스프레드시트에 한다. 날짜, 종목, 무게, 그리고 그날 컨디션 한 줄. 앱도 여러 개 써봤지만 결국 돌아온 건 시트였다. 중요한 건 도구가 아니라 "지난주의 나"와 비교할 수 있는 데이터가 남느냐다. 27주 치 기록이 쌓이니 재미있는 게 보이는데, 내가 운동을 빠뜨린 주는 거의 예외 없이 회사에 야근이 이틀 이상 있던 주였다. 의지 문제가 아니라 에너지 총량 문제라는 증거다.
살아남은 목표 2: 글쓰기, 미루던 걸 시스템으로 바꿨다
주 1편 글쓰기는 개발자로 일하면서 늘 마음 한구석에 있던 목표였다. 머릿속에는 쓸 게 많았다. 장애 대응하면서 배운 것, 아이 키우면서 산 물건들, 돈 관리 실패담. 그런데 "시간 나면 써야지"는 15년 동안 단 한 번도 작동한 적이 없는 계획이었다.
올해 바꾼 건 하나다. 쓰는 시간을 정하는 게 아니라 발행 요일을 정했다. 마감이 있으면 어떻게든 쓰게 된다. 회사에서 배포일이 있으면 어떻게든 코드가 완성되는 것과 같은 원리다. 처음엔 주 1편도 버거웠는데, 두 달쯤 지나니 글 하나에 들어가는 시간이 절반으로 줄었다. 최근 두 달은 주 2편 이상 발행하고 있다. 조회수는 아직 보잘것없다. 그래도 8개월 치 글이 쌓이니 예전에 겪은 문제를 검색하다 내 글이 나오는 순간이 온다. 그 맛에 계속 쓴다.
글감 관리 방식도 하나 정리해두면, 나는 메모 앱에 "글감" 폴더 하나만 두고 지나가다 떠오른 문장을 한 줄씩 던져 넣는다. 발행 전날에 그 폴더를 열어 가장 살이 붙어 있는 놈을 골라 쓴다. 글감을 그때그때 찾으려고 하면 빈 화면 앞에서 30분을 날리는데, 쌓아둔 한 줄에서 시작하면 첫 문단이 10분 안에 나온다. 글쓰기 목표가 있는 분들에게 유일하게 자신 있게 권하는 방법이다.
부수적인 효과도 있었다. 글로 정리하려고 하면 어설프게 아는 것과 제대로 아는 것이 갈린다. 회사에서 후배들에게 설명할 때 말이 짧아지고 정확해졌다. 이건 목표 세울 때 기대하지 않았던 이자 같은 수익이다.
살아남은 목표 3: 가족 나들이 월 1회, 유일하게 초과 달성
7개 목표 중 유일하게 계획을 넘긴 항목이다. 8개월간 11회. 비결은 시시할 정도로 단순한데, 매달 첫 주 일요일에 다음 달 나들이 날짜부터 캘린더에 박아두는 거다. 장소는 나중에 정해도 된다. 날짜가 먼저 잡혀 있으면 다른 일정이 그 자리를 침범하지 못한다. 날짜를 안 잡아두면 회사 일이든 집안일이든 뭐든 그 자리를 채운다. 8년 넘게 아빠로 살면서 얻은 몇 안 되는 확실한 노하우다.
돈도 생각보다 안 든다. 11회 중 7회는 도시락 싸서 간 근교 공원과 무료 전시였다. 아이들은 호텔보다 돗자리를 더 오래 기억한다. 이건 첫째가 커가면서 직접 확인한 사실이다. 아이가 "아빠 우리 또 언제 가?"라고 물을 때 다음 달 날짜를 바로 말해줄 수 있다는 것, 이게 이 목표에서 얻은 가장 큰 보상이다.
접은 목표들: 폐기에도 이유는 남긴다

사진: Unsplash, Christopher Gower
새벽 5시 기상은 3월에 공식 폐기했다. 두 달 해보고 내린 결론은, 이건 목표가 아니라 남의 생활 패턴이었다. 막내가 밤에 두 번 깨는 시기에 5시 기상을 하면 총수면이 4시간대로 떨어진다. 그 상태로 출근하면 오전 코드 리뷰 품질이 눈에 띄게 떨어졌다. 내 몸으로 A/B 테스트를 한 셈인데, 결과가 명확했다. 잠을 줄여서 얻는 아침 1시간보다, 잠을 지켜서 얻는 하루 전체의 밀도가 컸다. 새벽 기상 자체를 부정하는 게 아니다. 아이가 통잠을 자는 집이라면 좋은 전략일 수 있다. 다만 남의 성공 루틴을 내 조건 확인 없이 이식하면 안 된다는 것, 그게 두 달 치 수면을 지불하고 배운 내용이다.
영어 회화는 8개월간 9회 하고 멈췄다. 실패 원인은 분석이 끝났다. "언젠가 해외 컨퍼런스에서 질문하고 싶다"는 동기가 너무 멀었다. 마감도 없고, 안 해도 당장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목표는 내 경우 100% 밀린다. 이건 폐기가 아니라 동기가 생길 때까지 반납이다.
사이드 프로젝트 수익화는 보류다. 만들긴 만들었다. 그런데 만들기만 했다. 홍보와 운영에 쓸 에너지가 지금 생활에 없다는 걸 인정하는 데 6개월이 걸렸다. 수익 0원이라는 결과보다, 내 가용 시간이 어디까지인지 정확히 알게 된 게 올해의 수확이라면 수확이다.
독서 24권은 12권으로 하향했다. 현재 7권이니 남은 4개월에 5권이면 된다. 목표를 깎는 게 지는 것 같아서 오래 미뤘는데, 달성 불가능한 숫자를 방치하는 것보다 달성 가능한 숫자로 바꾸는 쪽이 연말에 남는 게 많다. 운동에서 이미 배운 교훈을 그대로 적용했다.
살아남은 목표와 죽은 목표의 차이
표를 놓고 보니 생존한 목표 3개에는 공통점이 있었다. 셋 다 요일이나 날짜가 캘린더에 박혀 있었다. 죽은 목표 4개는 전부 "틈나면 하는" 목표였다. 의지력 차이가 아니었다. 나는 살아남은 목표에나 죽은 목표에나 비슷한 의지를 갖고 있었다. 차이는 구조였다. 시간이 예약된 목표는 생활이 흔들려도 자리가 남고, 예약이 없는 목표는 애 셋 아빠의 일상에서 0순위로 밀려난다.
하나 더. 살아남은 목표는 전부 한 번 하향 조정을 거쳤거나 처음부터 낮게 잡은 것들이다. 주 3회를 주 2회로 깎은 운동이 그렇고, 월 1회로 낮게 잡은 나들이가 그렇다. 목표를 낮추는 건 포기가 아니라 유지 비용을 낮추는 리팩토링에 가깝다. 일단 돌아가게 만들고, 그다음에 키운다. 코드나 목표나 같다.
반대로 죽은 목표들의 사인을 보면, 하나같이 시작 시점의 의욕이 가장 높았던 것들이다. 새벽 기상과 영어 회화는 1월 1일에 제일 설렜던 목표였다. 의욕의 크기와 생존율이 반비례하는 게 얄궂은데, 생각해보면 당연하다. 의욕이 큰 목표일수록 계획을 공격적으로 잡고, 공격적인 계획은 애 셋 아빠의 일상에서 첫 번째 변수에 무너진다. 내년 목표를 세울 때 가장 설레는 항목의 계획을 절반으로 깎아야 하는 이유다.
중간 결산, 실제로는 30분이면 끝난다
중간 결산이라고 하면 거창해 보이는데, 내가 한 건 일요일 밤에 노트북 열고 30분 앉아 있었던 게 전부다. 순서는 세 단계다.
1단계, 연초에 적은 목표를 원문 그대로 옮긴다. 기억으로 재구성하면 안 된다. 사람은 자기가 세웠던 목표를 현재 성적에 맞춰서 은근슬쩍 낮춰 기억한다. 나도 운동 목표를 "주 2회였지 아마"라고 기억하고 있다가 노트를 열어보고 주 3회였다는 걸 확인했다.
2단계, 각 목표에 숫자를 붙인다. 몇 회, 몇 권, 몇 원. 숫자가 안 붙는 목표는 그 자체로 문제다. "영어 잘하기" 같은 목표는 결산이 불가능하고, 결산이 불가능한 목표는 애초에 관리가 불가능하다.
3단계, 생존·폐기·조정 셋 중 하나로 판정한다. 여기서 중요한 건 폐기를 부끄러워하지 않는 거다. 폐기는 실패가 아니라 리소스 회수다. 영어 회화에 붙어 있던 죄책감을 회수해서 글쓰기에 넣었더니 두 달 만에 주 2편이 됐다. 죄책감도 총량이 있는 자원이더라.
이 30분을 아까워서 안 하면, 12월에 "올해 뭐 했지"라는 훨씬 비싼 질문을 만나게 된다. 나는 작년까지 매년 그 질문을 만났다.
하반기에 바꾸는 것들

사진: Unsplash, Road Ahead
남은 4개월은 목표를 새로 늘리지 않는다. 대신 세 가지만 조정한다.
첫째, 운동은 주 2회를 유지하되 토요일 달리기 거리를 5km에서 7km로 늘린다. 횟수를 늘리는 것보다 성공 확률이 높다고 판단했다. 겨울이 오면 달리기는 실내 자전거로 대체할 계획인데, 이건 작년 12월에 달리기를 통째로 쉬어버린 실패의 재발 방지책이다.

사진: Unsplash, VD Photography
둘째, 글쓰기는 발행 편수 대신 검색 유입 수를 보기로 했다. 편수는 이미 습관이 됐으니, 다음 단계는 읽히는 글이다. 12월까지 하루 검색 유입 100명이 기준이다.
셋째, 12월 마지막 주에 올해와 똑같은 표를 다시 만든다. 이 글이 그 표의 중간 저장 지점이다. 결산은 연말에 한 번 하면 늦고, 중간에 한 번은 해야 방향을 틀 시간이 남는다.
정리하며
연초 목표 7개 중 3개 생존, 성공률 43%. 자기계발서에 나올 숫자는 아니다. 그런데 8개월 전의 나와 비교하면 주 2회 운동하는 몸, 8개월 치 글, 아이들과의 나들이 11번이 남았다. 목표는 다 지키라고 있는 게 아니라, 연말에 뭐가 남았는지 셀 수 있게 하려고 있는 거라는 게 올해 중간 결산의 결론이다.
혹시 연초 목표를 어디에 적었는지 기억나는 분이 있다면, 이번 주말에 한 번만 꺼내 보시길. 판정이 험하게 나와도 괜찮다. 표가 하나 생기는 것만으로 내년 1월의 계획은 올해와 달라진다. 나는 올해 이 표 덕분에 처음으로 12월이 기다려진다. 결과가 좋아서가 아니라, 결과를 셀 방법이 생겨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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